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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정의와 명칭 지역별 방언 역사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

by 여니ing 2023. 5.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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찹쌀, 멥쌀, 보리, 밀가루 등을 쪄서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킨 한국 고유의 술인  막걸리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막걸리의 정의와 명칭, 다양한 별칭 및 지역별 방언, 막걸리의 역사,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까지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막걸리의 정의와 명칭

대한민국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술인 탁주의 일종으로 술을 빚은 후에 청주를 떠내지 않고 그대로 걸러 적당량의 물을 섞어 다시 거른 술입니다. 막걸리는 쌀이나 밀에 누룩과 물을 섞어 발효시키는데, 술이 완성되면 용수를 박고 그 속에 고이는 청주를 떠내지 않기 때문에 흐리고 탁한 것이 특징입니다. 오래전부터 서민들의 사랑을 받은 술로 알코올 도수는 6-13%로 낮은 편입니다. 다른 술에 비하여 단백질은 풍부하면서도 열량은 낮은 것이 특징이며, 유산균과 효모가 풍부하게 들어있습니다. 막걸리는 빛깔이 흐린 술을 총칭하는 탁주의 한 종류로 '막걸리'라는 명칭이 정확히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주세법(1909년)과 주세령(1916)에 따라 주종 별 알코올 도수가 정해지면서, 기존의 물을 타지 않고 걸러낸 탁주와 물을 타서 희석시켜 싱겁게 마시는 탁주인 막걸리를 구별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이에 당시 서민들 사이에서 통용되던 막걸리라는 용어를 공식적인 명칭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한글 명칭인 막걸리가 조리서에 처음 등장한 것도 주세령 이후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 요리제법, 1924>에서부터입니다. 현재는 막걸리가 탁주류를 대표하는 술이 되면서 막걸리와 탁주 간의 명칭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에 농림수산식품부에서는 이를 반영하여 2010년 <전통식품규격집> 개정판부터 막걸리와 탁주를 같은 용어로 개정했습니다. 또한 이와 같은 명칭상의 변화는 일본과 중구게서 탁주로 불리고 있는 다른 종류의 술과 우리 고유의 술인 막걸리를 구별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별칭 및 지역별 방언

막걸리와 같은 탁주류의 술은 예부터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렸습니다. 곡식으로 빚은 술이라서 곡주, 우유처럼 흰 술이라서 백주, 흐리고 탁한 술이라서 탁주, 찌꺼기가 남는 술이라서 재주, 알콜 도수가 낮아 술맛이 연하고 술기운이 박하다 하여 박주, 집집마다 담가먹는 술이라서 가주, 제사 때 제상에 올리는 술이라서 제주, 농사지을 때 먹는 술이라서 농주, 시골에서 마시는 술이라서 촌주, 백성이 가장 많이 즐겨 마시는 술이라서 향주,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라서 국주 등으로 불렸습니다. 이 외에도 신맛을 중화시킨 술이란 뜻의 회주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옛날에는 술 빚는 기술이 낙후되어 술이 쉽게 시어졌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해 나뭇재나 풀재를 술독에 넣어 신맛을 중화하였습니다. 막걸리는 전국적으로 만들어진 술이기 때문에 대포, 왕대포 같이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명칭 외에도 그 지역 고유의 다양한 방언들이 존재하는데 감지(함경도), 다박주, 탁바리(제주도), 막길래(경상남도), 막고래(평안도), 빡주(전라남도 장성), 젓내기술(충청남도 논산), 탁주배기(부산) 등이 대표적입니다.

 

막걸리의 역사

삼국시대에는 막걸리와 같은 탁주류에 대한 구체적인 명칭과 제법을 알 수 있는 기록은 없고, <삼국유사> <가라국기> 에 수로왕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용례를 빚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여기에 탁주를 뜻하는 요자가 들어있어 이것을 탁주류에 대한 기록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삼국지위서동이전>의 '고구려가 장양(술 빚기, 장 담그기 등 발효음식의 총칭)을 잘한다'는 기록이나 '일본 <고사기>의 기록, 그리고 <해동역사>에 소개된 당나라의 시인 이상은의 공자시에 나오는 '멥쌀로 빚은 신라주'에 관한 기록들을 볼 때 당시의 주조 기술이 주변국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뛰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우리 민족이 상음 한 3대 주종인 청주, 탁주, 소주가 완성된 시기로 이전의 삼국시대와 달리 여러 문헌에서 구체적인 술 이름이 등장하여 대략적인 술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가양주문화의 발달로 양조기술이 더욱 고급화되고 술의 종류도 다양해진 시기입니다. 술의 종류와 양조기법들이 기술된 백과사전류의 서적과 고 조리서를 통해 이 시기 술 문화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동안은 우리 전통주의 암흑기였습니다. 조선총독부가 세수 확대를 목적으로 만든 주세법과 주세령 등으로 인해서 허가받지 않은 사람은 술을 빚을 수 없게 되어 우리 전통주의 맥을 지켜온 가양주 문화가 말살되었고, 술의 품질을 규격화시켜 조선시대부터 이어오던 우리 술 문화의 다양성이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도 막걸리는 별도의 도구가 필요한 소주나 청주와 달리 만들기가 쉽고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민간에서는 밀주로 계속 만들어졌습니다.

 

밀가루로 만든 막걸리

광복이후 전쟁으로 인한 식량부족과 정부의 양곡관리법에 따른 순곡주 제조 금지령으로 쌀 대신 외국에서 수입한 밀가루를 막걸리의 주원료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밀막걸리는 쌀막걸리에 비해 단맛은 덜하고 신맛이 강하며 빛깔은 밀기울의 함량에 따라 누르스름한 빛깔을 띠는 등 이전의 쌀막걸리와는 다른 형태였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1960~70년대에는 밀막걸리가 우리 주류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밀막걸리의 수요가 급증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발효와 숙성이 덜 된 제품을 생산하거나 발표기간을 인위적으로 줄이려는 불량양조업자들로 인해서 막거리는 점차 사람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1990년대 들어 다시 쌀막걸리의 생산이 본격화되었지만 영세한 양조업자들이 경제적인 문제로 양질의 쌀을 사용하는 대신 품질이 낮은 오래된 묵은쌀을 사용하거나 밀가루를 섞은 혼합형 막걸리를 생산함으로써 쌀막걸리마저도 시장의 관심을 끄는데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알코올 도수가 낮고 유산균과 단백질이 풍부한 막걸리가 고급 탁주로 복원되고 다양한 막걸리 제품이 출시되면서 점차 주류시장에서 옛 위상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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